'카르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8.09.29 카르멘 - 누가 더 재수가 없을까?(...)2
  2. 2008.09.28 사랑은 들에 사는 새? - 카르멘(Carmen, 2004)
  3. 2008.09.22 '카르멘' 사랑에 눈이 먼 집착과 그로부터 벗어나는 자유

카르멘 - 누가 더 재수가 없을까?(...)

호세는 성실한 태도로 모범적 근무를 행하던
흠잡을데없는 사회인으로서 중사진급을 눈앞에 두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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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의 평화로운 일상이
담배공장에서의 우연한 만남으로 뒤틀리게 될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호세는 물론이거니와 카르멘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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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제의 오페라로 유명한 카르멘이전에
소설가로서 극중에서도 등장하는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 원작 '카르멘'에 기초하여 만든 이 작품은

설령 카르멘과 플롯이 비슷하다고하여도(사실은 같은게 당연하지만)
부디 오페라를 보는 눈으로는 보지말아주었으면한다

무슨 말인고하니
음악은 대체적으로 그 선율의 아름다움만으로도
지극히 일상적일이나 혹은 일상적이고 평범함의 기준 이하의 이야기들조차
나름대로 미화시킬수있는 강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기때문이다

아닌것 같다고?..

여자가 싫다는데 차이고난 남자의 징징가사가 대중가요에 얼마나 많은가?(...)

하바네라와 오페라속의 아름다운 음악들이 사라진
카르멘에게 남은건 다름 아닌 원작속 그녀의 모습이다



사랑의 기원



영화 '불을 찾아서'를 보면
공동소유가 개개인의 소유로 변하는 과정으로
식인종 부족으로부터 구출해낸 여자를
주인공만이 소유하는걸 보여준다

그런 부분을 본다면
집착이란 감정은 어떤 면에선 굉장히 순수하고 원초적 감정이다

다만 타겟의 입장에서 그게 어떤가는 다르겠지만..

카르멘이 살던 시대는 원시시대가 아니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그녀는
그런 중세시대에서 새처럼 자유로운 자신의 영혼을 지켜나가는 여자였다

자유로이 이쪽 저쪽의 가지에 앉으며
자신이 원하는대로 쾌락과 즐거움을 추구하고
그러면서도 누구에게도 구속받지않으며
자신만의 자유로운 삶을 살던 카르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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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자유로운 카르멘에게 빠진 호세는
그녀의 자유로움을 사랑했지만
타인에게 보여주는 자유로움보단
오직 호세 하나만을 위한 자유로움을 보여주길 원했고

그런 호세의 갈망은 카르멘의 독점소유라는 집착의 새장을 만들어낸다

물론 극중 카르멘은 그야말로 우라질년(..)이다

중세가 아니라 현대에 전생으로 태어나도 배에 칼이 꽂혀죽어도 이상하지않을 그런..


영화에서 꽤나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호세의 성격이 조금 파탄적으로 비추어진달까

특히나 극중 마지막 부분인
시체를 껴안고 키스를 퍼부으며 애무하는 모습을 보고있으면
'아 정말 갈때까지 갔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사이코패스적 모습을 보여준다(...)



한 남자의 인생수난사?


이야기 초반
메리메에게 호세가 카르멘을 처음 만나서 그녀를 감옥으로 호송하던 도중
카르멘의 꾐에 넘어가 그녀를 풀어주는 부분을 말하면서 메리메에게 하는 말이 있다

'바스크를 모욕하는 사람이라면 나도 그 얼굴을 그었을텐데 그녀도 그랬죠'

나름 정당화라면 정당화지만
여기에서도 호세는 죽은 카르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못한다

이야기의 부재인 누가 더 재수가 없는가가 참 불분명한데

그냥 보면 호세가 불쌍해보일 법도 하다

전도유망한 모범시민에서 산적으로까지 내려앉고 급기야
사람을 죽이고 이후 범죄자로서 죽게되는 남자와

원나잇 스탠드를 즐기며 이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선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자기 마음대로 사는 여자에게
우연히 꼬인 너무 진지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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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로 인해 원나잇 스탠드의 즐거운 일상이 아작나는 여자


적어도 남자는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알면서도
늪에 발을 담구듯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다른 남자들처럼 일순간 사랑했으나

곧 여느 남자처럼 뒤돌아선다


과연 누가 더 재수가 없고 누가 더 불쌍할까?



막장커플의 사랑



물론 카르멘은 위에서도 언급했듯 일반적 여자는 아니나
조금 수위를 완화해서 현대에도 팜므파탈적 이미지

즉 요부는 남자에겐 나름대로 특정페티쉬즘같은
일종의 동경의 대상이 된다

자연스럽게 날아와 귓가에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잠시동안 행복한 순간을 가진후

타인의 남겨진 감정등은 상관없이
자신의 쾌락이 끝나면 이내 버리고 사라지는 요부


혹자는 카르멘이 구속받는 것을 싫어하는 그야말로 '자유'를 갈구했다는 식으로
미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그녀의 자유는
타인의 감정을 의식하지않기에 사회라는 '관계'의 형성이 주요한 요소가 되는
인간으로서의 그녀는 어디까지나 자유라는 이름으로 미화된 캐릭일뿐이다


이 커플의 재미난 점은
남자 또한 콩깍지가 씌이다못해
욱 하는 감성이 너무나 충만한 나머지

카르멘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하로
규범으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다루지못할 굉장한 사건들만 치고다닌다



카르멘이 자유분방하게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거기에 질투심과 강한 집착을 다시금 불태우는 호세가
급기야 그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스스로 끊기위해 죽였을지도 모른다

허나 적어도 그녀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애원했을때
이전엔 쉽게 말한적 없었던 그 어느때보다 절박한 상황에서의
자신의 영혼의 울림과 같은 말을

절박하고도 단호하게 '싫어' 라고 말하던 그녀를 보며
자신이 그녀를 영원히 소유할수없고

그렇다고 그녀를 잊을수없는걸 알기에
결과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죽였다고 생각하는게 더 바람직하지않을까싶다

그야말로 애증관계의 극에 어울리는 결말이랄까..


잡담

티비도 안보는 입장에서 이런 영화를 본건 참 오랫만이다
마치 ocn새벽타임에 어울리는 영화의 느낌이 참 강해서 말이지(...)

사실 3인 3색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 좀 더 막장전개로 글을 써볼수도 있을텐데
(가령 카르멘이 처음 도망가는 부분 호세의 풋페티쉬라던지..)

하긴 3인 3색 아니면 안봤을듯하니
이런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한 주제에 대해 포스팅을 올릴때에
제일 마지막에 올린다는건 처음에 올리는것보다 몇배는 캐압박인듯?.
(뭐 질질 미루다가 스스로가 만드는 결과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카르멘이나 호세나
양 쪽 다 전혀 미화하지않은
무시무시한 영화가 아닌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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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들에 사는 새? - 카르멘(Carmen, 2004)

여담으로 영화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면..
처음 3 3색에 선정된 영화가 '카르멘'이라는 사실을 듣고 이 영화를 선정한 가우초에게 물었다
.

유메네코: "오페라 카르멘 하고 틀려요
?"
가우초: "네 그냥 카르멘이에요
."
유메네코: "그러니까...내용이 완전히 다르냐고요.
."
가우초: "화면에서 완전히 다를거에요..ㄷㄷㄷ
"
유메네코: "그러니까..내용은 같단 거죠
?"
가우초: "아무래도 좀 다르지 않을까요. 오페라는 본적이 없어서요
."
유메네코
: "....."

본격적인 이야기 시작전에 미리 말하자면... 본 내용은..비제의 오페라 "카르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정확하게는 비제의 오페라의 원작이 되는 메르메의 소설 "카르멘"을 영화화 한 것이기 때문에 둘은 같은 원작을 둔 형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
가우초군 -_-! 이제 영화 카르멘을 보았으니 오페라 카르멘도 한번 보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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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는가?


배경은 정열의 나라 스페인. 한때 유럽의 강대국이었던 그 나라의 한 마을에서 사건은 일어난다. 수년간 시계추 같은 군대 생활을 묵묵히 해오며 지위를 쌓아간 호세. 그리고 살아감에 있어서 자유를 추구하고 거침없는 여인 카르멘. 서로 상극인 그들이 사랑에 빠지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기 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필요 없을 듯 하다. 다만 나에게 있어서 영화 카르멘은, 날 적부터 자유롭고 끝까지 자유롭고자 한 카르멘과 그런 그녀를 사랑한 탓에 자멸(自滅)의 늪에 빠져버린 한 남자의 삐그덕 거리는 일대기를 다룬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14세기 무렵부터 유럽에 등장하여 떠돌아다니는 소수민족 집시. 카르멘은 한 곳에 정착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자신이 집시라는 사실에 칼을 들이댈 정도로 발끈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날적부터 천성인 자유에 대한 추구는 어느 누구도 잡을 수 없다.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없는 자유로운 천성을 가진 집시인 그녀의 사랑 역시 어느 한 사람에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노래하지 않았던가, 당신이 잡을 거라 믿고 있는 새는 날갯짓 하며 날아가버릴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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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카르멘은 컨트롤 불가능한 여자다. 누군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는 한 남자에게 정착할 수 없고 그녀 스스로도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를 첫사랑의 상대로 점찍어버린 가련한 호세는 안타깝기만 하다. 그가 차라리 조숙한 다른 여인을 처음에 만났더라면 다른 남자들처럼 카르멘을 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동정을 바친 첫사랑 카르멘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호세의 마음은 아마 첫사랑을 가슴에 묻어두고 잊지 못한다는 남자들의 모습을 제대로 투영했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아마도 호세 자신도 카르멘이 스스로도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 여인은 나만을 바라보고 사랑할 수 없는 여인이라고.. 애써 스스로 부정해오고 매달려 보았지만 그녀는 흡사 망부석과도 같았다.

좀 확장되어 본다고 질책 받을 지 모르지만, 나는 호세가 카르멘을 죽인 것은 자유 분방한 그녀를 매어둘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한 것 보다, 카르멘에 대한 감정을 스스로 조절 못하고 반복된 살인을 저지르면서 자기 자신이 자멸해 가는 것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가 카르멘을 죽인 것은 카르멘을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카르멘을 죽이고 자수를 했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너무 과장하여 생각하는 것일까?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참.. 입이 쓰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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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개인적인 견해를 하나 덧붙이자면..

. 하바네라가 없는 카르멘이란 왠지 앙꼬 없는 찐빵 같았다.-_-;

이것이 원작 소설을 영화화 한 것이기 때문에 비제의 카르멘과는 다르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_ㅠ 음악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아니 하다못해.. 춤추는 장면이라도 하나 제대로 넣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가득 남는다. 영화 OST자체도 미약한 편이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는 스페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사랑은 집시아이, 제멋대로지요.

당신이 싫다 해도 나는 좋아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때는 조심해요!

 -하바네라 中-

아무렴조심해야 하고 말고 -_-;

 
Ps. 다음 3인 3색은..제가 선정한 "블랙 호크 다운" 입니다. 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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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사랑에 눈이 먼 집착과 그로부터 벗어나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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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르멘(2003)은 개인적으로 스페인 영화를 참 좋아하게 만들어준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고 매우 색다른 느낌으로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작품이다.

영화속에서 우리는 누구의 시점으로 이 영화를 관람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겠다. 선천적으로 신용과는 거리가 먼 직업과 태생을 가지고 있는 카르멘의 입장에서 영화를 볼 것인가 아니면 신뢰할 수 있는 직업의 소유자였던 남자 주인공의 입장에서 영화를 볼 것인가이다.

물론 감독의 경우 쉽게 가기 위해서 남자 주인공의 입장을 전적으로 인용을 한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우리가 단순히 그럼 그렇게 봐야지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카르멘의 입장에서 영화를 볼 필요성도 생기는 것이다.

영화를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본다면 단순히 카르멘이라는 여성을 나쁜 여성으로 몰고갈 수 있다. 남자 주인공의 입장은 그렇게 전달이 된 것이나 우선 카르멘의 입장으로 들고가보자.


태생부터 집시 출신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통 집시가 그렇듯 어느 한곳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제대로 된 직업을 계속해서 가지고 살지도 않는다. 그렇듯 여기서의 카르멘은 다양한 직업을 가지게 된다. 담배말이를 시작으로 창녀, 산적, 점술가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나가게 된다. 그렇다고 중간에 가지게 된 직업이 고귀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천하게 태어나서 천하게 살다가 그렇게 죽어간 한 여성일 뿐이다.

이렇게 하찮은 직업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음도 보여주고 있다. 집시라는 사실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있지만 감독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던 카르멘의 입장으로 바꿔서 생각을 했으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좋은 직업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만큼 자신의 자유를 팔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찮다고 느껴지는 직업이라도 그만큼 내가 하고싶은대로 할 수 있다면 그에대한 매력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예를들어 집이라는 자신의 자산이 있다면 그곳에서 머무르게되고 다른 곳으로 떠난다면 자산을 팔고 거기에 자신의 집을 사고 그런 복잡한 문제에 얽히게 되지만 천한 직장과 자산도 없다면 자기가 떠나고 싶은 곳으로 그냥 무작정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남자 주인공은 카르멘을 사랑한다. 정말 너무 사랑한다. 우리가 이 남자 주인공의 행동을 보고 사랑이라고 규정짓기는 조금 왜곡된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건 개인에게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일단 사랑이라고 하자. 여기서 남자 주인공의 행동은 누가 보더라도 왜곡된 사랑의 결정체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곰곰히 생각을 해보면 당신이 사랑한 것이 사람이 아닌 물체라고 가정을 하더라도 정말 놓아주기 싫고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그런 충동을 느낀적은 없는가?

물론 남자 주인공의 행동으로 우리는 사랑을 하더라도 저렇게 집착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을 하고 단순히 교훈적인 의미로 넘어갈 수 있다. 남이하면 불륜 내가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괜히 생긴 말은 아니다. 사랑에 대한 소유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갓 태어난 아기도 부모의 관심을 위해서 울고 난리를 피운다. (물론 이 부분은 생존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자신은 그런적이 결코 없는가에 대해서 투영해볼 수 있는 캐릭터로 존재한다.


반면 카르멘의 경우 어떠한가 자신은 별로 관심도 없는 남자가 자기 좋다고 쫓아다니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면에서 이 영화는 짝사랑 영화를 정말 미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는 점은 캐릭터에 자신을 투영해보면서 느끼는 바가 생기기 때문이다. 자신을 짝사랑 하면서 집착을 하던 사람을 한번 떠올리면서 카르멘의 입장에서 자신을 투영해보자. 남자 주인공의 경우는 어떻게 하더라도 자신에게 투영을 할 수 있겠지만 카르멘의 경우 경험상 자신에게 투영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자신이 집착을 가졌지만 그 집착을 느끼는 상대방으로 생각을 해보자.


캐릭터에게 자신의 경험을 투영을 하더라도 자신의 경험보다 영화속의 내용은 상당히 왜곡된 사랑으로 진행되고 있다. 카르멘을 차지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죽이고 영화 끝에서는 결국 카르멘을 죽이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에게 투영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짝사랑을 하는데 상대방은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고 있다. 물론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는 사람의 경우 모를 수 있겠지만 그냥 그렇다고 가정을 해보자. 이때 갈림길에 서게 된다. 다른 사람과 한판 뜨던지 체념을 하는 길로 걸어가게 된다. 물론 둘 다 이 세상에서 얼마든 가능한 일이다.

조금 간단한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해보자 우리 모두 아이가 된다고 가정을 하자.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인형이 있고 A라는 아이도 그 인형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나도 그 인형을 가지고 싶고 A도 그 인형을 가지고 싶다. 하지만 인형은 단 한사람의 소유가 아니고 유치원에 속해있다. 가끔 유치원의 다른 아이들도 그 인형을 가지고 논다. 하지만 나는 그 인형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혼자 가지고 놀고싶다. 유치원의 다른 아이들은 자기가 옆에 붙어만 있으면 얼씬대지는 않지만 A라는 아이는 처치곤란이다. 그래서 나는 A라는 아이가 사라지기를 바란다.


결국 영화 마지막에 카르멘을 죽이는 것도 마찬가지의 길을 걷고 있다. 집착이라는 이유로 카르멘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 결국 죽이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의 경우 남자 주인공의 입장과 카르멘의 입장으로 볼 수 있는데 먼저 남자 주인공의 입장부터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남자 주인공의 경우 그토록 카르멘을 사랑하여 쫓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카르멘을 소유할 수 없었다. 하물며 산적두목까지 죽였는데도 카르멘은 여전히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결국 최후의 선택으로 죽여서라도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치솟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조금 종교적인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기독교에서 볼 수 있는 성찬식의 경우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살과 피를 먹는 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동남아시아의 경우 동물을 산채로 먹는 최면 의식을 통해서 그 동물과 하나가 되는 행동을 보여주기도 하고 고대 그리스에서 디오니소스를 받아들이는 의식에서도 그런 행동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종교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영화 향수의 마지막 장면이 가장 좋게 표현을 했다고 생각을 한다. 여기서는 카르멘을 죽이는 것을 조금 고등 종교적으로 표현을 했다고 보면 되는데 먹지 않았다는 것에서 그 의미가 존재하고 교회에서 살인을 했다는 것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의 사후세계를 비는 면모와 제단에 올려놓았다는 점에서 그 해석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


카르멘의 입장에서 죽음을 다시 보도록 해보겠다. 카르멘은 그동안 구속을 피해서 자신의 자유를 찾아 그렇게 돌아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 주인공은 끝까지 쫓아왔고 죽여달라고 말을 하면서 결국 자신의 자유를 찾아서 떠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너를 사랑할바에는 죽는 것이 좋겠다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이미 영화 앞부분부터 카르멘의 자유를 관점으로 본 사람의 경우 이 장면이 상당히 인상깊게 다가갈 수 있겠다.



죽음을 선택하더라도 자유를 갈망했던 카르멘과 사랑의 소유욕으로 불타올라 결국 자신을 파멸의 길로 몰고간 남자 주인공은 결국 영화속 최후의 피해자로 남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악녀 카르멘으로 다가오는가 자유를 갈망한 카르멘으로 다가오는가는 마치 2가지 상이 떠오르는 한폭의 그림처럼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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