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해당되는 글 26건
- 2014.04.26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웨스 앤더슨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1
- 2011.10.03 화이트 - 함은정이 나와서 본 것은 아님.
- 2011.10.03 킬러 엘리트 - 문제는 옆 상영관에서는 도가니를 하였다.
- 2011.03.30 히어 애프터 - 심령술사의 이야기이지만 미스테리를 기대하면 안된다.
- 2009.04.19 인도의 바닥 '슬럼독 밀리어네어'
- 2009.01.26 적벽대전은 3편짜리 영화가 아니다.
- 2008.12.05 쏘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 2008.09.29 카르멘 - 누가 더 재수가 없을까?(...)2
- 2008.09.28 사랑은 들에 사는 새? - 카르멘(Carmen, 2004)
- 2008.09.22 '카르멘' 사랑에 눈이 먼 집착과 그로부터 벗어나는 자유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 기분이 드네요.
그 동안 영화를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종종 보더라도 블로그에 후기를 남길만한 영화가 아니었거나,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지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본 영화입니다. 그럴싸하게 트레일러를 틀어주면서 광고를 했던 영화도 아니었고(적어도 제가 접할 수 있는 매체의 한계에서는 그랬습니다), 그냥 주변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굉장히 호평을 하기에 어떠한 검색도 없이 그대로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굉장히 인상이 깊어서 머리 속에서 잊혀지기 전에 리뷰를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어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일단 영화를 보면서 크게 인상이 깊었던 부분은 이 이야기 자체는 계속해서 건너 듣는 내용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 과정은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면 사실 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빈도가 낮습니다. 엔딩 즈음에서 기억이 나서 '아,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한 것이었지...' 하는 것이 생각날 정도였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이야기를 하면서 도대체 몇 차례 정도 들어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니 약 4회 정도 들어간 이야기가 메인 스토리였습니다. 아니, 감독과 관람객까지 포함하면 6차례가 되어버릴 수 있겠군요. 영화를 보다보면 종종 나오기도 하는 기법이기는 하지만, 마지막에 다시 환기시켜서 그런지 재미가 있었던 부분입니다.
영화 자체는 굉장히 희극적인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보더라도 큰 상관은 없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서 느끼는 점은 감독의 수준은 이보다 더 높아보이는데, 그래서 그가 과연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의도 자체가 없을 수 있습니다만, 스스로의 한계를 느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최근에는 별로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영화를 보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영화를 보고나서 깔끔하지는 않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시대가 변화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무엇이 되더라도 제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것 이상의 것이 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네요. 영화는 좋지만, 그냥 제 능력의 한계인 것 같습니다.
보기 드물게 추천을 해주고 싶은 영화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적는 글들을 지나치게 분석적으로 들어가면서, 스토리를 스포일러를 해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았던지라, 개봉 중이기도 해서 간략하게만 적어보았습니다.
p.s.
엔딩 크레딧 마지막 부분에 우측 하단에 나오는 아주 작은 애니메이션이 정말 귀엽더군요.
함은정이 출연한다고 본 영화는 절대 아니고... 매년 그래도 공포 영화 한편씩은 그래도 꼬박꼬박 보는 편인데, 올해의 기대작이었다. 그리고 이 뒤늦은 포스팅은 절대 내가 티스토리에 영화 블로그를 가지고 있었다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기 때문도 아니다. -_-
사실 이 법칙은 공포 영화라기보다는 보통의 B급 영화에도 포함이 되는 규칙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미녀 그리고 비명이다. 뭐, 여기서 먼저 죽고 나중에 죽고 그런 문제는 조금 복잡해질 수 있으니 미루도록 하고 최소한의 법칙은 이 두 가지다. 그럼 화이트에서 이 두 법칙을 정확하게 지켰는가? 살펴보면 그렇다고 보기는 좀 어렵다.
저주를 컨셉으로 잡고있고, 이 저주를 풀어나가기 위한 착한 소녀의 역할을 함은정이 맡아서 하고 있는 것인데, 사실 이 저주에 대해서 조금 불만족스럽다. 사람이 한명, 한명 죽어나가는 과정에서 이 저주에도 일종의 룰이 부여되었다면 조금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초반에 죽는 2명 정도는 결국 자신은 이를 대비할 틈도 없이 죽고 나서 단서가 나오는 황당한 사태를 보여주는데, 다소 느낌이 비중이 너무 낮아지는 조연으로 보여서 아쉬움을 남긴다(???)
- 2% 허전한 연기
- 아이돌의 비애
- 녹음실에 귀신이 있으면 노래가 대박난다.
사실 영화를 고를 때, 특별한 생각 없이 골랐는데, 동생이 '로버트 드 니로'가 누구야? 라는 말이 제일 컸던 것 같다. -_-
그냥 액션이 보고 싶었고, 사실 영화가 끝나고 나온 다음에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는데, 친구가 '영화 뭐 봤는데?' 라는 식상한 질문을 했을 때, '내가 본 영화 이름이 뭐더라...?' 하는 상황이 발생했었다. -_-
사실 영화를 본 다음 바로 그래도 글은 적어야지... 라는 생각은 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다가 방금 생각나서 적는 것이 사실이다. -_-
* 액션
액션을 보러 가기 위해서 선택을 한 영화였기 때문에 빵빵!!! 터치고, 두두둑 쏘고, 싸우고, 터지고 하는 부분에서는 만족했다. 또한 다양한 무대를 배경으로 영화가 진행이 되기 때문에 스케일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진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 스토리
보통 액션 영화라면 스토리는 저질로 가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이 영화는 그렇게 질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전체적인 스토리상 가면 갈수록 관객이 지치게 만들어버리는 마력의 힘이 있는데, 러닝 타임 116분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기분은 3시간이 지나간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이 영화가 주는 교훈
그래도 영화를 봤으면 무슨 영화를 보았는지 이름 정도는 기억을 해 주어야겠다는 예의를 배웠다.
ps
너무 오랜만에 글을 적으니 글이 안나온다. -_-
근 몇년간 감상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좋았던 영화. 바로 히어 애프터 입니다. 예고편을 보면서 굉장히 끌리는데? 하다가 감독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여서 보지 않는 편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틀림없이 좋은 감독이라는 사실은 확실하지만, 다만 이해하기 좀 난해한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보통 영화를 보러 갈 때 쓰나미가 몰려오던 영상을 보고 블록버스터로 오해를 하고 간 사람들의 불만이 많다. 하지만 확실한건 이 영화는 블록버스터 영화도 아니고, 심령술을 이용하여 사후세계에 대한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영화 역시 아니다.
이 영화를 로맨스 영화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마 포스터로 인한 오해가 가장 큰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영화의 핵심은 주인공과 여주인공, 그리고 소년에게도 있지만 자신의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그들과 다시 소통하고 싶어하는 일반인의 욕구 역시 굉장히 중요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결국 이 영화는 다양한 소재를 한번에 활용을 한 '드라마'라는 장르를 가진 영화라는 것이다.
* 아래의 설명으로 인해서 영화의 재미가 반감될 수 있습니다. *
* 이제 본격적인 캐릭터 별 이야기를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속에서의 조지는 느린 진행으로 사실 조금 재미가 없습니다.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능력이 어떠한 것인지, 아마 우리 역시 일반인이기 때문에 조지의 능력은 굉장히 부러운 능력입니다. (돈도 참 많이 벌 수 있겠고요.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부럽군요.) 조지는 계속해서 자신의 능력에 불평을 합니다. 위의 예고편에서도 나오듯이 스스로의 능력을 저주로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인간관계를 가질 수 없는 것이죠. 이 능력으로 인해서 일반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예를 감독은 친절하게 보여줍니다. 요리수업에서 만나는 여자이죠. 역시 자기 자신을 대입을 해서 생각을 하더라도, 누군가 자신만이 아는 것을 주저리 주저리 떠든다면, 아마 자신의 비밀이 모두 벗겨진 기분, 혹은 다른 기분이 들더라도 두려움을 느낍니다. 때문에 돈도 명예도 신경쓰지 않고 스스로 일반인이 되어서 사는 것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하지만 희망퇴직 권유를 받게 되지요. 이 사건이 평범한 삶을 목표로 하던 조지의 삶에 변화가 됩니다. 그래서 영국으로 가게 되죠.
조지가 영화 후반에 변화를 한 캐릭터라면 마리는 영화의 초반에 변화를 한 캐릭터입니다.
잘 나가는 아나운서 마리는 애인과의 휴가에서 쓰나미로 인해 죽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마치 알 수 없는 세상이었던 것이죠. 이후 마리의 삶은 완벽하게 바뀌게 됩니다. 경험했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결국 마리는 각종 자료를 모아 사후세계에 대한 책을 만들게 되고, 출판 전시회를 위해 영국으로 가게 됩니다.
쌍둥이 형제는 마약에 취한 어머니의 밑에서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 중 형은 약국에서 어머니의 약을 구해서 돌아오는 도중 사고를 당해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평소 형에게 늘 의지하면서 살아오던 동생은 형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매달립니다. 영화 중반부에 형의 죽음으로 변화를 하고, 영화 막바지에 조지를 만나면서 다시 변화를 합니다.
(영화 정보를 들여다보면 쌍둥이 형제의 이름이 조지와 마커스입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동생의 이름이 마커스였으면 영화 후반에 주인공 조지를 만난 것은... 말 장난이 되겠군요. 주변 사람들의 이름도 잘 외우지 못하는 기억력이라 영화 속 주인공들의 이름까지 기억하기는 힘이 드네요.)
캐릭터의 요약을 하자면 결국 조지의 비중이 가장 큽니다. 하지만 조지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조지를 중심으로 있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영국에서의 이 세 사람의 만남은 세 사람의 앞길을 모두 바꾸게 됩니다. 물론 정확하게 어떻게 변하는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만... 소년은 자신의 길을 걸어나갈테고, 조지와 마리는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겠죠.
아마 영화에서 CG가 들어가거나 조금이라도 웅장하다고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부분은 전부 없었을겁니다. 쓰나미는... 대충 으악~ 하고 물 속에서의 장면이 늘어났을 가능성도 있고... 지하철 폭발 부분이라던지는 좀 영향이 적었을 수 있습니다. (농담인거 아시죠... -_-)
- 과연 조지는 샌더스 부인을 심령술을 이용하여 자식을 만나게 해 주었는가...
모릅니다... 저 역시 궁금합니다. 누군가 제작진에게 메일을 보내서 물어 보신 후에 알려주세요.
- 조지는 런던에서 마리의 호텔에서 어떤 내용의 편지를 남겼을까...
상당히 장문의 내용이던데... 역시 궁금합니다.
(뭐, 이런 류의 질문은 포레스트 검프에서 과연 대중 앞에서 뭐라고 이야기를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죠...)
* 최근 영화 순위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 했지만, 아마 잘못된 마케팅과 예고편으로 인한 사람들의 오해로 관객들의 기대와 달라서 생긴 불만족으로 인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확실한 것은 좋은 영화라는 것이고, 시간이 되시면 나중에 DVD라도 빌려서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간단한 소개를 할 때 인도 빈민층 출신의 청년이 퀴즈대회에서 상금을 타는 스토리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퀴즈는 그저 거드는 요소일 뿐 인도 빈민층의 인생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인도의 빈민층이 겪을 수 있는 문제들과 더불어 인도 자체의 문제들도 함께 다루고 있다. 고속 성장으로 인해서 뒤로 밀려나는 빈민층... 사실 IT 강국인 인도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직종은 영화에서도 등장하지만 선진국의 상담전화의 창구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은 그런 상담전화를 받는 회사에서 사원들에게 차를 대접하는 종업원이다. 바닥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딱히 주인공이 아니라도 그의 형도 그렇고 사랑하는 애인도 바닥 인생을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퀴즈쇼가 차지하는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은 이 쇼 프로그램을 매일매일 보는 인도인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이다. 사람찾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보는 프로그램에 등장하여 자신의 애인을 찾는 것이다. 보조적이면서도 덕분에 고문까지 당하는 중요한 소재인 퀴즈쇼를 이용하여 줄거리가 마치 로또맞은 빈민층 청년. 이렇게 만드는 것은 약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부에 주인공과 그의 형의 어머니가 죽는 장면은 인도의 이면을 보여준다. 바로 인도의 종교 분쟁이다.
영상은 영어가 아니니 듣기 위해 노력한다고 들릴 영상은 아니다. 그냥 간단하게 힌두교와 무슬림 및 기타등등의 종교인 분포에 대한 설명이 있다. 인도의 종교 분쟁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를 바라보면 알 수 있다. (사실 한 국가였다가 종교를 이유로 파키스탄이 독립한 것으로 알고있다. 최근 카슈미르 테러 등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의 어머니가 죽는 장면은 바로 종교 분쟁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면서 주인공이 고문을 받으면서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에 대한 설명으로 답하는 종교따위 없는게 더 좋다는 내용의 대사...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인도를 비춰보는 것이 아니라 감독의 뜻이라고 생각을 한다. 실제로 인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 사람을 죽이는 종교따위 없는게 좋다는 생각을 한다면 종교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이 영화는 인도에서 빈민층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바이블 같은 영화라고 생각을 한다. 어린 시절에는 화장실 입장료를 받기도 하고 소매치기를 하기도 하고 어른들에게 잡혀가면 앵벌이도 한다. 여자의 경우 매춘업을 하기도 하고 남자의 경우 폭력배로 거듭나기도 한다. 이 막장에 가까운 인생을 보여주면서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mbc에서 하는 W라는 프로그램을 간혹가다 보다보면 인도 빈민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보통 쓰레기를 줍는 아이들의 이야기, 혹은 소매치기 등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취재되어 올라온다. 개인적으로 이런 내용의 다큐, 시사, 영화 등이 나오는 이유는 급속적인 발전으로 소외된 계층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을 한다. 물론 대한민국만 하더라도 이러한 문제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
최근 인도 제 1의 도시로 떠오른 뭄바이. 예전에는 봄베이로 불리면서 아주 작은 어촌마을로 알려져 있다. 단순이 지리적인 요건으로 유럽과 가장 가까운 항구 도시라는 이점과 철도가 깔리면서 발전을 하게 된 것이다. 도시가 발전하면서 사실 그 중심에는 슬럼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있다. 간혹 이런 슬럼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한국에 그런게 왜 없냐. 쪽방은 아직도 서울에 존재한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생각을 하면 고속 성장을 하는 국가들의 이면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것이 감독의 의도라고 생각을 한다. 개발도상국에서 더욱 일어나기 쉬운 부의 불균형과 재분배, 그로인한 인권조차 지켜지지 않는 피해에 대한 것이 주제라고 생각을 한다.
물론 감독은 이런 진부한 주제를 하품을 하면서 보지 않을 수 있도록 영화에 속도감과 위트를 섞어서 즐겁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나서 정말 감탄을 하게 된 것은 감독의 센스라고 할 수 있다. 대니 보일의 다른 영화를 본 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화면적인 구성과 음향, 스토리, 거기에 더해지는 적절한 위트. 그야말로 이 스토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적합한 감독이 영화를 찍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감독 최고의 센스는 인도 특유의 뮤직비디오를 그대로 영화 엔딩 크레딧에 적용을 했다는 것이다.
ps...
1. 서비스 슬럼독 밀리어네어 엔딩 크레딧용 댄스 씬
<슬럼독 밀리어네어 댄스씬>
2. 서비스 인도 특유의 대규모 인원 동원된 뮤직 비디오
<제목 모름... 가사는 매우 자극적입니다.>
3. 서비스.... 오랜만에 뚫훑뚫훑도 들어봅시다.
<Tunak Tunak Tun>
4.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등장한 아역 배우들은 뭄바이 슬럼가에 사는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고 아직도 거기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5. 영상을 구하는 편의성이 존재하기도 했지만 구태여 제가 왜 유튜브로 모든 영상을 깔았는지에 대한 이유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저는 보통 뭔가 의도하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사실 적벽대전 1편이 작년에 등장했을 때 총 3편짜리 영화라는 소문이 매우 무성했기 때문에 별로 보고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충 적벽대전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해전이 이루어지기 전에 끝나버린다는 이야기도 역시 영화를 보지 않게 만드는 요인이었죠. 대충 3편의 영화라고 가정을 했을 때 1편에서 전쟁을 준비하는 단계, 2편에서 해전 약간과 기타 등등의 이야기, 3편에서 대규모 전쟁으로 마무리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편은 한번 볼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보러가기로 결정하고 DVD를 이용해서 1편을 미리 감상을 했습니다.
시리즈로 2편의 내용을 모두 적어보려고 하니 아직 영화를 관람하지 않은 분들은 포스팅을 읽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의도하지 않은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거든요. (사실 삼국지 스토리인데 스포일러다 아니다 이런 것도 좀 웃기는군요.)
수많은 포스터 이미지 중에서 이 이미지를 사용한 이유는 단지 제가 보기에도 주유의 아내로 나온 소교가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별로 특별한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제 취향입니다.
사실 삼국지의 스토리를 주제로 찍은 영화는 삼국지를 꼭 봐줘야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제가 삼국지를 읽기는 읽었느냐? 읽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인간이고 삼국지 매니아는 아닌 관계로 모든 인물들의 이름과 사건들을 100% 완벽하게 나만의 주관을 가지고 삼국지를 관람한다는 것은 조금 무리입니다.
삼국지 적벽대전의 주요 포인트롤 요약을 좀 해보고 시작을 하겠습니다. 전략적인 부분에서는 제갈량의 화살을 가져온 것과 화공을 통해서 몇배의 적들을 일거에 섬멸한 것이 대단한 작전으로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조에 대항해서 손권과 유비가 손을 잡고 싸웠다는 것. 사실 삼국지의 3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위촉오를 제대로 성립시키기 위한 첫 돌이랄까요. 여러모로 상당히 의미가 깊은 전투입니다.
생각보다 이 영화는 단순히 스케일만 큰 전쟁영화도 아니고 중국인들이 삼국지를 그릴 때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관우님이 짱이라능... 하악..." 이런 것도 없습니다. 문제는 삼국지를 최소한 한번정도 읽었는지의 지적 소양과 병법의 기본적인 부분을 조금 이해를 하고 있어야 조금은 더 재미있어 진다는 단점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치고박는 싸움이 끝이 아니라 기본적인 지적 소양이 있는 사람은 더 재밌는 그런 영화라는 사실이죠.
삼국지는 3개의 큰 세력이 있기 때문에 작가는 한 나라의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글을 써내려갑니다. 적벽대전에서는 정확하게 이야기를 하기는 애매하지만 일단 조조는 아닌게 확실하고요. 제가 생각하는 주인공은 제갈공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약간 추가를 하자면 주유도 주인공에 포함이 되겠군요.
우선 1편... 거대한 전쟁의 시작을 보자면 누군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전쟁이 시작하기 전의 단계를 영화로 만들었다는 것은 한줄 요약으로 훌륭한 요약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조의 천하통일 야욕을 보여주면서 유비와 손권의 연합이 주된 내용입니다. 1편을 보신 분이라고 하더라도 2편을 보기 전에 다시 머리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보시고 관람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비교적 다각적인 시각으로 삼국지를 풀어나가는데요. 조조만 제외됩니다. 개인적으로 나쁜 놈으로 등장하는 것이 조조라고 생각합니다. 백성을 생각하는 군주 유비와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서 자신의 능력에 대한 비관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손권. 사실 이 부분에서도 강동의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는데 삼국지를 모르면 강동의 호랑이가 손견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손견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유명한 손자병법의 직계 후손이죠. 삼국지에서는 출중한 무장이자 권력에 욕심이 많은 인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1편 자체는 스토리적인 부분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할만한 것이 사실 거의 없습니다. 2편을 위한 포석에 불과하니까요. 지상전에 등장하는 수많은 엑스트라를 구경하면서 역시 중국은 대규모로 사람 끌어다가 쓰는데는 도가 텄구나... 이렇게 감탄하면서 영화를 관람하면 되는 수준입니다. 대신 인물적인 부분은 제법 섬세하게 의미를 부여하니 주요 출연진이 이야기를 하는 대사들은 하나씩 곱씹어 보시길 바랍니다.
이제 2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합시다. 2편은 본격적인 적벽대전을 위한 내용인데요. 삼국지에서는 제갈량이 제사를 지내서 바람의 방향을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가곤 합니다. 오우삼 감독은 제갈량이 풍수지리에 능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풍향이 바뀐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입장에서 영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또 한가지 이야기를 하자면 조조의 군대가 80만이 넘는 군대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삼국지를 제가 읽을 때에는 20만으로 본 것 같아서 조금 이상한 감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생각을 해보자면 예전 수나라나 당나라에서 100만 대군을 거닐고 고구려를 공격했을 때 실제로 식량이나 보급물자를 담당하는 군사들을 모두 생각하면 300~400만의 군대가 고구려를 향해 갔을 것이라는 내용이 오버랩 됩니다.
일단 배는 합성임에 틀림이 없는 사실일테고요. 이후 전쟁을 하는 부분에서 조조의 진영을 묘사한 부분도 있는데요. 사료적으로 조사를 해서 잘 묘사했다는 것에 동의를 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영이 그냥 대충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성이 되어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다른 삼국지와 관련된 게임을 하시면 느끼시겠지만 성에 들어가는 그런 전쟁에서 나오는 그런 성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사실을 아실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오래된 이야기라 약간 허구도 섞여있는 삼국지 소설의 문제도 있을테고요. 소설도 삼국지 연의와 다르게 작가마다 어떤 입장에서 삼국지를 이어나갔느냐가 조금씩 다릅니다. 물론 전쟁의 승리 요인과 패배 요인에 대한 입장도 조금씩 다릅니다. 이 영화는 오우삼이 그려나가는 삼국지라고 생각을 하시면 편안하게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자신이 알고있는 삼국지와 다르다고 박박 우기지 마시고 자신이 알고있는 삼국지와 비교를 하면서 그 차이점을 느껴보는 것입니다.
3편짜리 영화로 알고 있었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오니 2편짜리 영화입니다. 다만 영화를 보고나서 오우삼 감독이 삼국지의 다른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계속해서 이어나갈 가능성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총체적으로 오우삼 감독은 자신만의 삼국지를 잘 만들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비록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단지 공명과 주유가 전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들을 제외하고도 삼국지에서 가장 중요하게 살펴봐야 하는 각 인물들의 내적인 요소까지 세밀하게 표현을 했다고 할 수 있겠군요. 대부분의 중국인이 관우님을 매우 좋아하는 것과는 다르게 개인적으로 오우삼 감독은 조운을 매우 좋아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생각보다 조운이 매우 사기적인 캐릭터로 등장을 하더군요.
손상향의 경우도 당찬 여자의 이미지와 함께 조조군의 진영에 첩자로 들어갔을 때 사귄 그 친구인 천랑장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우정 이야기도 묘사를 해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오우삼 감독이 정녕 공을 들인 부분은 전쟁 부분도 있겠지만 바로 캐릭터를 제대로 묘사하기 위해서 애를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끝으로 저도 금을 치면서 등장한 음악적인 부분과 주유의 검무는 어떤 이유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개인적으로 인물적인 묘사에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만 영화 2편 한번씩 보고 자세하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좀 무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애초에 인물도 매우 많이 등장하는데다가 위에서 오우삼의 삼국지를 느껴보라고 적었지만 보는 사람의 삼국지로 재해석되기 마련입니다.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 트랙백 달아주시는 것도 환영합니다.
12월 3일을 기준으로 드디어 쏘우 시리즈의 5번째 편이 등장했다. 1편의 등장 이후 충격적인 반전으로 관람객으로 하여금 반전의 묘미를 알게 해준 영화다. 개인적으로 쏘우 시리즈를 상당히 좋아하는 편인데 반전은 1편을 따라갈 수 없고 이후에는 그냥 단순히 그 트릭들이나 그런 점... 잔인한 고어물로 취급하고 즐겨본다. 이제 5편이 등장한 기념으로 지금까지의 쏘우를 시리즈별로 정리를 해볼까 한다.
참고로 지난 영화를 이야기하는 입장에서 스포일러가 다분히 있으므로 영화를 관람하지 않은 분들의 경우 가급적 읽지 않고 그냥 지나쳐가길 바랍니다.
쏘우 1
개인적으로 1편의 경우 극찬하는 영화 중 하나이다. 1편에서의 쏘우는 반전의 뒷통수를 강하게 때려주었다. 그렇게 때려줄 수 있던 이유를 간단하게 분석을 하자면 양떼 몰이다. 누가 범인일까? 누가 이 일을 계획한걸까? 하는 생각을 만들어주면서 관객들을 몰아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결국 양떼를 모는 것이 양을 잡아먹는 늑대였다.
한참 스릴러에 빠져있는 시기에서 쏘우는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다른 영화를 볼 때 쏘우와 비교를 하게 되는 그런 수준이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로 쏘우의 후속작이 나오면 원작인 1편과 비교를 하는게 당연하다.
영화를 보면 딱 느껴지는 것이지만 저예산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지하실 몇개와 소품들... 그리고 병원 임대, 등장인물도 많지 않다. 쏘우 1편은 정말 스토리로 승부를 본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고 그 성공은 정말 대단했다. 위의 포스터에도 나오겠지만 제작비 50배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그리고 전세계에 수출이 되면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저예산 영화의 문제점도 있기는 있다. CCTV 화면을 자주 보여주는데 사실 이 화면은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적응하기 힘든 점도 있다. 그래서 보통 돈이 제법 들어가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CCTV의 구도를 살리면서 화질은 좋게 만들기 위해서 카메라를 바꾸거나 새로 달아놓고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 부분은 상당히 중요한데 사실 쏘우 1편은 극장에서 볼만한 그런 영화는 아니다. 스토리의 퀄리티는 다 보고나서 뒷통수 맞은 기분을 느끼기에는 확실한 스토리지만 영상이나 음악은 극장의 스케일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쏘우 1편은 DVD를 이용해서 집에서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5편을 설명하려면 제법 긴 포스팅이 될테니 1편의 칭찬은 이정도에서 멈추도록 하고 2편으로 넘어가보자.
쏘우 2
2편으로 들어가면서 가장 큰 차이점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바로 감독이 다르다. 물론 쏘우 1편에서의 스토리적인 면을 바라보자면 작가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지만 그리도 결국 표현은 감독이 하는 것이다. 이제 쏘우의 후속작이 나오면서 과연 원작의 어떤점에 집중을 하는 속편을 만들 것이냐로 나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의 오멘이나 엑소시스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원작의 특정한 어떤 부분에 자신이 자극을 받아서 그쪽으로 진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2편의 경우 원작에서의 반전에 치중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반전적인 요소는 크게 반감되지 않았다. 하지만 1편에서의 반전은 2편에 대한 기대감을 너무 상승시켰고 어떻게 사람들이 100점 만점에 150점을 원하는데 그 점수를 충족할 수 있을까? 그래도 쏘우 2편은 70~80점 정도의 점수는 만족시켰다고 생각한다. 일단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많이 죽으면서 잔인한 고어물의 전통성을 이어나가려고 노력하는 것은 보인다. 그리고 쏘우의 색다른 묘미 중 하나는 사람을 가두는데 사용되는 트릭이다.
쏘우의 중요한 것은 바로 "나와 게임 한판하지 않겠나?" 이것이다. 룰을 알려주고 무언가를 희생해서 그 룰을 충족시키면 목숨은 건질 수 있다. 결국 손을 잃던지 발을 잃던지 뭔가를 잃게된다면 목숨은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반전 자체는 그럭저럭 만족할만한 그런 결과를 가지고 왔다. 그러면서 결국 3편에 대한 예고장을 던지면서 끝냈기 때문에 드디어 쏘우 시리즈의 다음편도 있다. 이런 예견은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보면 된다.
마찬가지로 2편도 이정도로 끝내고 3편 설명으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쏘우 3
쏘우 3편이다. 사실 그나마 다행인건 2편부터 4편까지는 감독이 같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이제 쏘우는 4편까지 보면 이제 더 볼 필요가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2편이 원작에서의 반전쪽에 치중을 한 작품이라고 느껴진다면 3편은 원작에서의 잔인한 고어물에 중점을 두었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사실 3편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최악의 작품이 아닌가!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평이 극과 극을 달리기도 했다.
3편에서 마지막 반전은 4편에 대한 단순한 예고인지 직쏘의 사망으로 이제 더이상 쏘우는 없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다. 여기서의 오류가 있는데 이미 3편의 주인공은 직쏘의 모든 게임을 훌륭히 완수를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 게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3편의 스토리는 개인적으로 1편 다음으로 제일 좋았다는 생각을 하는 편이다. 보통 사람들은 1편 다음에는 2편이 그나마 제일 좋다고 평을 하는 편이다. 3편이 좋다는 이유 몇가지를 들어보고 4편에 대한 평으로 넘어가도록 해보자.
우선 스토리다. 원작에서의 반전 스토리는 양떼 몰이에 있다는 것을 위에 적어놓았다. 그럼 3편에서도 양떼몰이가 있는가? 있다. 이건 1편 반전에 버금가는 그런 반전이라고 생각을 하는 편인데 솔직히 영화 막바지에 여의사와의 연관성, 그리고 딸이 또 있다는 반전을 누가 예상할 수 있었는가. 이런 스토리는 사실 막판에 어이없게 끼워맞추는 그런 스토리로 평가를 해도 할 말이 없는 스토리이기는 하지만 2편보다는 작가가 원작의 시스템을 다시 찾아가려고 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3편부터는 그 잔인함이 점점 재미있어진다. 이게 단순히 잔인한건지 그냥 역겨운건지는 정확하게 구분하기가 힘들지만 역시 쏘우는 고어물로 확실히 갈아탄 것은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3편을 보고나서 엄청난 짜증이 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그 다음편이 있다는 암시를 주었기 때문이다. 4편도 있다니... 이건 정말 엑소시스트나 스타워즈 및 기타등등의 시리즈물 뺨치는구만... 이런 생각을 안한 사람이 있을까...
쏘우 4
쏘우 4편입니다. 사실 쏘우 3편에 이어서 딸을 구하는 아버지의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은 저세상으로 날아가버렸습니다. 4편은 이제 회상하는 그런 스토리를 보여주면서 마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데요. 역시 영화가 끝나면서 알게되는 사실이지만 5편도 있을껄~ 하는 암시는 던져주고 마감했습니다.
4편을 끝으로 다시 감독이 바뀌는데요. 원작/2~4/5편 이렇게 감독이 바뀐건 스토리를 보면 제법 중요한 점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4편의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시리즈 영화의 막바지에 나오는 주인공의 회상같은 그런 이미지가 강한데요. 여기서 오리지널 직쏘는 이제 영원히 죽게 됩니다.(물론 이후 작품에서도 이런 회상 저런 회상 이러면서 꾸역꾸역 나올 가능성은 농후합니다.)
별로 잔인하다고 느껴지지도 않고 긴장감을 이끌어낸 것도 아니고 그렇다할 반전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영화를 보고 나와서 친구와 함께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영화 자체는 늘 봐오는 시리즈 영화니깐 그냥 그렇다고 치더라도 씨발 이 시리즈의 끝은 어딘데? 갈수록 실력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하향되면서 왜 꾸역꾸역 만들어내는거지? 라는 대화를 했습니다.
사실 4편은 직쏘의 회상 이외에는 큰 의미가 없는게 사실입니다. 3편에서 이미 꼴까닥 한건 나왔고요. 딸인 아만다도 꼴깍 한것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시점의 경우 3편의 마지막과 비슷하게 돌아가면서 끝내주기 때문에 정말 5편이 없기를 바랬습니다.
쏘우 5
그렇게 나오지 않기를 바라던 쏘우 5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편까지 봤는데 5편을 안보면 뭔가 후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서 봤습니다.
결과는 참혹합니다. 역대 쏘우 중에서 가장 최악의 스토리와 잔인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전의 저의 글을 보신 분들은 제가 이미 공포를 느끼는 감각을 상실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5편은 특별히 잔인하지도 않습니다. 5편을 보고나니 정말 앞선 4편의 영화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5편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에 다소 자세하게 적을 예정이니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은 스포일러 예정이니 그냥 지금쯤에서 조용히 창을 닫으셔도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겠다는 의지를 가진 분들도 있을테니 저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적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앞에 있는 쏘우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트릭들도 그렇습니다만 뭔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쏘우에 등장해서 게임을 하고 이를 풀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들은 현재의 삶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습니다. 보통 이런 이야기가 스토리의 절반정도를 차지하는 편입니다. 등장인물의 문제점 등을 부각하면서 자신이 무슨 문제를 일으켜서 직쏘에게 잡혀서 들어왔는지 그런 내용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영화의 스토리를 100이라고 보면 그런 부분은 단지 3? 이정도라고 표현하는게 옳겠군요.
그냥 작가가 이번에도 자신만의 규칙을 정해놓고 이것들은 지킨다라고 적어놓았는데 감독은 그게 중요한건지 모르고 그냥 대충 넘어간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렇다고 등장한 트릭들이 기발한 것들도 아닙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최고의 트릭은 쏘우 3편이었나요? 거기에 나오는 갈비뼈에 걸어놓고 열쇠는 염산에 떨어트려서 손을 염산에 담구고 빼야하는 그런거... 차라리 그런게 기발하고 좋았습니다.
이번편에 등장하는건 전편들에 등장하는거 우려먹기도 상당히 많았고 (약간 회상적인 부분이 나오죠. 결국 필림 우려먹기에 불과한겁니다. 아니면 세트장 재활용?) 단계는 총 5단계이지만 특별히 잔인하다고 느껴질만한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목이 좀 잘리고 사람 몸이 폭탄으로 인해서 타고 물에 담궈서 전기로 지지고 전기톱에 손을 집어넣는 그것을 제외하고는 없습니다. 아차... 처음 시작할때 움직이는 도끼가 하나 있군요. 차라리 이건 4편에서 등장했던 눈알을 꼬맨것과 입을 꼬맨 사람이 서로 살기 위해서 몸부림 치는 모습이 더 좋아보입니다.
그러면 결국 5편에서 남는게 무엇인가요? 새로운 직쏘의 등장. 이것을 제외하고는 없습니다. 감독은 시리즈 물을 이어나가면서 이전의 작품들과의 차별성을 두고 자신만의 작품을 새로 이어나가고 싶은 마인드가 강했나봅니다. 4편은 회상으로 루즈하게 진행을 해주고 5편은 새로운 시작이라면서 루즈하게 나갔습니다. 아차 생각해보니 이런식으로 이전 직쏘가 죽으면서 새로운 직쏘에게 넘겨주는 형식이라면 쏘우 시리즈는 100편도 넘게 만들 수 있겠군요? 그냥 드라마로 제작하는건 어떤가 싶습니다.
그나마 이 영화를 보면서 쏘우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해준건 영화 마지막에 유리 관에 들어가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말을 따르지 않고 압사당해서 죽게 되는데요. 쏘우의 가장 중요한 것은 룰을 지키면 살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아만다가 뒷통수 치면 목숨도 영원히 바이바이지만 말이죠.
여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쏘우 5편은 쓰레기입니다. 이전까지 모든 시리즈를 극장에서 보셨다고 하더라도 5편만은 아닙니다. 그냥 DVD금방 나올지도 모르니 기다렸다가 보시길 바랍니다.
혹시 이런 말을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반전에 대한 기대를 버려서 고어물로 보다보니 잔인함에 기대를 하게 되면서 잔인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의 제목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이겁니다.
PS
쏘우를 즐기는 또 하나의 묘미는 포스터에 있습니다. 제법 괜찮은 편이죠.
호세는 성실한 태도로 모범적 근무를 행하던
흠잡을데없는 사회인으로서 중사진급을 눈앞에 두고있었다
그런 그의 평화로운 일상이
담배공장에서의 우연한 만남으로 뒤틀리게 될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호세는 물론이거니와 카르멘조차도..
비제의 오페라로 유명한 카르멘이전에
소설가로서 극중에서도 등장하는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 원작 '카르멘'에 기초하여 만든 이 작품은
설령 카르멘과 플롯이 비슷하다고하여도(사실은 같은게 당연하지만)
부디 오페라를 보는 눈으로는 보지말아주었으면한다
무슨 말인고하니
음악은 대체적으로 그 선율의 아름다움만으로도
지극히 일상적일이나 혹은 일상적이고 평범함의 기준 이하의 이야기들조차
나름대로 미화시킬수있는 강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기때문이다
아닌것 같다고?..
여자가 싫다는데 차이고난 남자의 징징가사가 대중가요에 얼마나 많은가?(...)
하바네라와 오페라속의 아름다운 음악들이 사라진
카르멘에게 남은건 다름 아닌 원작속 그녀의 모습이다
사랑의 기원
영화 '불을 찾아서'를 보면
공동소유가 개개인의 소유로 변하는 과정으로
식인종 부족으로부터 구출해낸 여자를
주인공만이 소유하는걸 보여준다
그런 부분을 본다면
집착이란 감정은 어떤 면에선 굉장히 순수하고 원초적 감정이다
다만 타겟의 입장에서 그게 어떤가는 다르겠지만..
카르멘이 살던 시대는 원시시대가 아니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그녀는
그런 중세시대에서 새처럼 자유로운 자신의 영혼을 지켜나가는 여자였다
자유로이 이쪽 저쪽의 가지에 앉으며
자신이 원하는대로 쾌락과 즐거움을 추구하고
그러면서도 누구에게도 구속받지않으며
자신만의 자유로운 삶을 살던 카르멘
그런 자유로운 카르멘에게 빠진 호세는
그녀의 자유로움을 사랑했지만
타인에게 보여주는 자유로움보단
오직 호세 하나만을 위한 자유로움을 보여주길 원했고
그런 호세의 갈망은 카르멘의 독점소유라는 집착의 새장을 만들어낸다
물론 극중 카르멘은 그야말로 우라질년(..)이다
중세가 아니라 현대에 전생으로 태어나도 배에 칼이 꽂혀죽어도 이상하지않을 그런..
영화에서 꽤나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호세의 성격이 조금 파탄적으로 비추어진달까
특히나 극중 마지막 부분인
시체를 껴안고 키스를 퍼부으며 애무하는 모습을 보고있으면
'아 정말 갈때까지 갔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사이코패스적 모습을 보여준다(...)
한 남자의 인생수난사?
이야기 초반
메리메에게 호세가 카르멘을 처음 만나서 그녀를 감옥으로 호송하던 도중
카르멘의 꾐에 넘어가 그녀를 풀어주는 부분을 말하면서 메리메에게 하는 말이 있다
'바스크를 모욕하는 사람이라면 나도 그 얼굴을 그었을텐데 그녀도 그랬죠'
나름 정당화라면 정당화지만
여기에서도 호세는 죽은 카르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못한다
이야기의 부재인 누가 더 재수가 없는가가 참 불분명한데
그냥 보면 호세가 불쌍해보일 법도 하다
전도유망한 모범시민에서 산적으로까지 내려앉고 급기야
사람을 죽이고 이후 범죄자로서 죽게되는 남자와
원나잇 스탠드를 즐기며 이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선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자기 마음대로 사는 여자에게
우연히 꼬인 너무 진지한 남자
그리고 그로 인해 원나잇 스탠드의 즐거운 일상이 아작나는 여자
적어도 남자는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알면서도
늪에 발을 담구듯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다른 남자들처럼 일순간 사랑했으나
곧 여느 남자처럼 뒤돌아선다
과연 누가 더 재수가 없고 누가 더 불쌍할까?
막장커플의 사랑
물론 카르멘은 위에서도 언급했듯 일반적 여자는 아니나
조금 수위를 완화해서 현대에도 팜므파탈적 이미지
즉 요부는 남자에겐 나름대로 특정페티쉬즘같은
일종의 동경의 대상이 된다
자연스럽게 날아와 귓가에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잠시동안 행복한 순간을 가진후
타인의 남겨진 감정등은 상관없이
자신의 쾌락이 끝나면 이내 버리고 사라지는 요부
혹자는 카르멘이 구속받는 것을 싫어하는 그야말로 '자유'를 갈구했다는 식으로
미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그녀의 자유는
타인의 감정을 의식하지않기에 사회라는 '관계'의 형성이 주요한 요소가 되는
인간으로서의 그녀는 어디까지나 자유라는 이름으로 미화된 캐릭일뿐이다
이 커플의 재미난 점은
남자 또한 콩깍지가 씌이다못해
욱 하는 감성이 너무나 충만한 나머지
카르멘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하로
규범으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다루지못할 굉장한 사건들만 치고다닌다
카르멘이 자유분방하게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거기에 질투심과 강한 집착을 다시금 불태우는 호세가
급기야 그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스스로 끊기위해 죽였을지도 모른다
허나 적어도 그녀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애원했을때
이전엔 쉽게 말한적 없었던 그 어느때보다 절박한 상황에서의
자신의 영혼의 울림과 같은 말을
절박하고도 단호하게 '싫어' 라고 말하던 그녀를 보며
자신이 그녀를 영원히 소유할수없고
그렇다고 그녀를 잊을수없는걸 알기에
결과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죽였다고 생각하는게 더 바람직하지않을까싶다
그야말로 애증관계의 극에 어울리는 결말이랄까..
잡담
티비도 안보는 입장에서 이런 영화를 본건 참 오랫만이다
마치 ocn새벽타임에 어울리는 영화의 느낌이 참 강해서 말이지(...)
사실 3인 3색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 좀 더 막장전개로 글을 써볼수도 있을텐데
(가령 카르멘이 처음 도망가는 부분 호세의 풋페티쉬라던지..)
하긴 3인 3색 아니면 안봤을듯하니
이런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한 주제에 대해 포스팅을 올릴때에
제일 마지막에 올린다는건 처음에 올리는것보다 몇배는 캐압박인듯?.
(뭐 질질 미루다가 스스로가 만드는 결과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카르멘이나 호세나
양 쪽 다 전혀 미화하지않은
무시무시한 영화가 아닌가싶다(...)
여담으로 영화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면..
처음 3인 3색에 선정된 영화가 '카르멘'이라는 사실을 듣고 이 영화를 선정한 가우초에게 물었다.
유메네코: "오페라 카르멘 하고 틀려요?"
가우초: "네 그냥 카르멘이에요."
유메네코: "그러니까...내용이 완전히 다르냐고요.."
가우초: "화면에서 완전히 다를거에요..ㄷㄷㄷ"
유메네코: "그러니까..내용은 같단 거죠?"
가우초: "아무래도 좀 다르지 않을까요. 오페라는 본적이 없어서요."
유메네코: "....."
본격적인 이야기 시작전에 미리 말하자면... 본 내용은..비제의 오페라 "카르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정확하게는 비제의 오페라의 원작이 되는 메르메의 소설 "카르멘"을 영화화 한 것이기 때문에 둘은 같은 원작을 둔 형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우초군 -_-! 이제 영화 카르멘을 보았으니 오페라 카르멘도 한번 보도록...)
배경은 정열의 나라 스페인. 한때 유럽의 강대국이었던 그 나라의 한 마을에서 사건은 일어난다. 수년간 시계추 같은 군대 생활을 묵묵히 해오며 지위를 쌓아간 호세. 그리고 살아감에 있어서 자유를 추구하고 거침없는 여인 카르멘. 서로 상극인 그들이 사랑에 빠지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기 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필요 없을 듯 하다. 다만 나에게 있어서 영화 카르멘은, 날 적부터 자유롭고 끝까지 자유롭고자 한 카르멘과 그런 그녀를 사랑한 탓에 자멸(自滅)의 늪에 빠져버린 한 남자의 삐그덕 거리는 일대기를 다룬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14세기 무렵부터 유럽에 등장하여 떠돌아다니는 소수민족 집시. 카르멘은 한 곳에 정착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자신이 집시라는 사실에 칼을 들이댈 정도로 발끈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날적부터 천성인 자유에 대한 추구는 어느 누구도 잡을 수 없다.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없는 자유로운 천성을 가진 집시인 그녀의 사랑 역시 어느 한 사람에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노래하지 않았던가, “당신이 잡을 거라 믿고 있는 새는 날갯짓 하며 날아가버릴 것”이라고.
사실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카르멘은 컨트롤 불가능한 여자다. 누군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는 한 남자에게 정착할 수 없고 그녀 스스로도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를 첫사랑의 상대로 점찍어버린 가련한 호세는 안타깝기만 하다. 그가 차라리 조숙한 다른 여인을 처음에 만났더라면 다른 남자들처럼 카르멘을 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동정을 바친 첫사랑 카르멘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호세의 마음은 아마 첫사랑을 가슴에 묻어두고 잊지 못한다는 남자들의 모습을 제대로 투영했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아마도 호세 자신도 카르멘이 스스로도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 여인은 나만을 바라보고 사랑할 수 없는 여인이라고.. 애써 스스로 부정해오고 매달려 보았지만 그녀는 흡사 망부석과도 같았다.
좀 확장되어 본다고 질책 받을 지 모르지만, 나는 호세가 카르멘을 죽인 것은 자유 분방한 그녀를 매어둘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한 것 보다, 카르멘에 대한 감정을 스스로 조절 못하고 반복된 살인을 저지르면서 자기 자신이 자멸해 가는 것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가 카르멘을 죽인 것은 카르멘을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카르멘을 죽이고 자수를 했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너무 과장하여 생각하는 것일까?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참.. 입이 쓰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개인적인 견해를 하나 덧붙이자면..
…. ‘하바네라’가 없는 카르멘이란 왠지 앙꼬 없는 찐빵 같았다.-_-;
이것이 원작 소설을 영화화 한 것이기 때문에 비제의 ‘카르멘’과는 다르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_ㅠ 음악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아니 하다못해.. 춤추는 장면이라도 하나 제대로 넣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가득 남는다. 영화 OST자체도 미약한 편이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는 스페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사랑은 집시아이, 제멋대로지요.
당신이 싫다 해도 나는 좋아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때는 조심해요!”
-하바네라 中-
아무렴…조심해야 하고 말고 -_-;
Ps. 다음 3인 3색은..제가 선정한 "블랙 호크 다운" 입니다. ㄲㄲ
영화 카르멘(2003)은 개인적으로 스페인 영화를 참 좋아하게 만들어준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고 매우 색다른 느낌으로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작품이다.
영화속에서 우리는 누구의 시점으로 이 영화를 관람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겠다. 선천적으로 신용과는 거리가 먼 직업과 태생을 가지고 있는 카르멘의 입장에서 영화를 볼 것인가 아니면 신뢰할 수 있는 직업의 소유자였던 남자 주인공의 입장에서 영화를 볼 것인가이다.
물론 감독의 경우 쉽게 가기 위해서 남자 주인공의 입장을 전적으로 인용을 한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우리가 단순히 그럼 그렇게 봐야지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카르멘의 입장에서 영화를 볼 필요성도 생기는 것이다.
영화를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본다면 단순히 카르멘이라는 여성을 나쁜 여성으로 몰고갈 수 있다. 남자 주인공의 입장은 그렇게 전달이 된 것이나 우선 카르멘의 입장으로 들고가보자.
태생부터 집시 출신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통 집시가 그렇듯 어느 한곳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제대로 된 직업을 계속해서 가지고 살지도 않는다. 그렇듯 여기서의 카르멘은 다양한 직업을 가지게 된다. 담배말이를 시작으로 창녀, 산적, 점술가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나가게 된다. 그렇다고 중간에 가지게 된 직업이 고귀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천하게 태어나서 천하게 살다가 그렇게 죽어간 한 여성일 뿐이다.
이렇게 하찮은 직업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음도 보여주고 있다. 집시라는 사실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있지만 감독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던 카르멘의 입장으로 바꿔서 생각을 했으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좋은 직업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만큼 자신의 자유를 팔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찮다고 느껴지는 직업이라도 그만큼 내가 하고싶은대로 할 수 있다면 그에대한 매력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예를들어 집이라는 자신의 자산이 있다면 그곳에서 머무르게되고 다른 곳으로 떠난다면 자산을 팔고 거기에 자신의 집을 사고 그런 복잡한 문제에 얽히게 되지만 천한 직장과 자산도 없다면 자기가 떠나고 싶은 곳으로 그냥 무작정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남자 주인공은 카르멘을 사랑한다. 정말 너무 사랑한다. 우리가 이 남자 주인공의 행동을 보고 사랑이라고 규정짓기는 조금 왜곡된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건 개인에게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일단 사랑이라고 하자. 여기서 남자 주인공의 행동은 누가 보더라도 왜곡된 사랑의 결정체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곰곰히 생각을 해보면 당신이 사랑한 것이 사람이 아닌 물체라고 가정을 하더라도 정말 놓아주기 싫고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그런 충동을 느낀적은 없는가?
물론 남자 주인공의 행동으로 우리는 사랑을 하더라도 저렇게 집착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을 하고 단순히 교훈적인 의미로 넘어갈 수 있다. 남이하면 불륜 내가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괜히 생긴 말은 아니다. 사랑에 대한 소유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갓 태어난 아기도 부모의 관심을 위해서 울고 난리를 피운다. (물론 이 부분은 생존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자신은 그런적이 결코 없는가에 대해서 투영해볼 수 있는 캐릭터로 존재한다.
반면 카르멘의 경우 어떠한가 자신은 별로 관심도 없는 남자가 자기 좋다고 쫓아다니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면에서 이 영화는 짝사랑 영화를 정말 미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는 점은 캐릭터에 자신을 투영해보면서 느끼는 바가 생기기 때문이다. 자신을 짝사랑 하면서 집착을 하던 사람을 한번 떠올리면서 카르멘의 입장에서 자신을 투영해보자. 남자 주인공의 경우는 어떻게 하더라도 자신에게 투영을 할 수 있겠지만 카르멘의 경우 경험상 자신에게 투영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자신이 집착을 가졌지만 그 집착을 느끼는 상대방으로 생각을 해보자.
캐릭터에게 자신의 경험을 투영을 하더라도 자신의 경험보다 영화속의 내용은 상당히 왜곡된 사랑으로 진행되고 있다. 카르멘을 차지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죽이고 영화 끝에서는 결국 카르멘을 죽이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에게 투영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짝사랑을 하는데 상대방은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고 있다. 물론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는 사람의 경우 모를 수 있겠지만 그냥 그렇다고 가정을 해보자. 이때 갈림길에 서게 된다. 다른 사람과 한판 뜨던지 체념을 하는 길로 걸어가게 된다. 물론 둘 다 이 세상에서 얼마든 가능한 일이다.
조금 간단한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해보자 우리 모두 아이가 된다고 가정을 하자.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인형이 있고 A라는 아이도 그 인형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나도 그 인형을 가지고 싶고 A도 그 인형을 가지고 싶다. 하지만 인형은 단 한사람의 소유가 아니고 유치원에 속해있다. 가끔 유치원의 다른 아이들도 그 인형을 가지고 논다. 하지만 나는 그 인형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혼자 가지고 놀고싶다. 유치원의 다른 아이들은 자기가 옆에 붙어만 있으면 얼씬대지는 않지만 A라는 아이는 처치곤란이다. 그래서 나는 A라는 아이가 사라지기를 바란다.
결국 영화 마지막에 카르멘을 죽이는 것도 마찬가지의 길을 걷고 있다. 집착이라는 이유로 카르멘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 결국 죽이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의 경우 남자 주인공의 입장과 카르멘의 입장으로 볼 수 있는데 먼저 남자 주인공의 입장부터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남자 주인공의 경우 그토록 카르멘을 사랑하여 쫓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카르멘을 소유할 수 없었다. 하물며 산적두목까지 죽였는데도 카르멘은 여전히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결국 최후의 선택으로 죽여서라도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치솟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조금 종교적인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기독교에서 볼 수 있는 성찬식의 경우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살과 피를 먹는 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동남아시아의 경우 동물을 산채로 먹는 최면 의식을 통해서 그 동물과 하나가 되는 행동을 보여주기도 하고 고대 그리스에서 디오니소스를 받아들이는 의식에서도 그런 행동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종교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영화 향수의 마지막 장면이 가장 좋게 표현을 했다고 생각을 한다. 여기서는 카르멘을 죽이는 것을 조금 고등 종교적으로 표현을 했다고 보면 되는데 먹지 않았다는 것에서 그 의미가 존재하고 교회에서 살인을 했다는 것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의 사후세계를 비는 면모와 제단에 올려놓았다는 점에서 그 해석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
카르멘의 입장에서 죽음을 다시 보도록 해보겠다. 카르멘은 그동안 구속을 피해서 자신의 자유를 찾아 그렇게 돌아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 주인공은 끝까지 쫓아왔고 죽여달라고 말을 하면서 결국 자신의 자유를 찾아서 떠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너를 사랑할바에는 죽는 것이 좋겠다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이미 영화 앞부분부터 카르멘의 자유를 관점으로 본 사람의 경우 이 장면이 상당히 인상깊게 다가갈 수 있겠다.
죽음을 선택하더라도 자유를 갈망했던 카르멘과 사랑의 소유욕으로 불타올라 결국 자신을 파멸의 길로 몰고간 남자 주인공은 결국 영화속 최후의 피해자로 남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악녀 카르멘으로 다가오는가 자유를 갈망한 카르멘으로 다가오는가는 마치 2가지 상이 떠오르는 한폭의 그림처럼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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