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것에서 신선함을 찾다 – 슬럼독 밀리어네어



새로운 3 3색 영화가 정해지던 날은 모처럼의 휴일, 갓 나온 라면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였다. 뜬금없는(?) 전화 한 통으로 정해진 영화는 슬럼독 밀리어네어’. 그러나 고백하건 데, 급작스럽게 생긴 신분변화로 정신 없는 나날을 보내던 나에게 이 영화는 생소함 그 자체였다. , 덕분에 이 영화의 오프닝이 끝나면서 등장한 인도식 영어발음에 급 당황하여 내가 영화를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닌지 고민해야 하긴 했지만

 

그 간의 공백에 대한 것은 잠시 미뤄두고,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 보자면 이렇게 말 할 수 있겠다.

 

뻔하고 식상한 듯하면서도 절대 그렇지 않은 영화.”

 

요즘 나오는 영화들을 보면서 선뜻 영화관에 가기 쉽지 않은 것은, 요즘 영화의 수준이 내가 따라잡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시끌시끌한 A 영화도 그렇고, 저예산 영화로 단숨에 사람들을 사로잡은 B영화도 그렇고단순 명료한 영화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요즘 영화들은 솔직히 어렵다. 아니, 어렵고 씁쓸하다. 때문에 이 영화가 뻔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로잡았는지도 모르겠다.

 


인도의 슬럼가 출신, 카스트 계급에서도 수드라보다도 아래에 있는 하리잔(사실, 그가 불가촉천민 즉 하리잔이란 사실은 초반 종교 문제에서 회상하는 장면에서 그가 이슬람교도라는 것을 암시함으로서 나온 추측이다. 힌두교에서 타 종교로의 개종은 카스트 제도에서의 추방을 의미한다고 한다.)에 속하는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운명이라고 믿어온 여인을 위해 밀리어네어 퀴즈쇼에 출연하게 된다. 어느 누구도 올라갈 수 없었던 단계까지 올라간 그는, 결국 사기혐의로 경찰조사를 받게 되고, 차근히 문제를 어떻게 풀어갔는지 이야기를 하게 된다.

 


영화의 2/3는 이미 진행된 6단계의 퀴즈쇼와 주인공의 인생이 엇갈려 보여진다. 그가 단순히 문제의 답을 알고 있었던 이유는 그가 똑똑해서, 혹은 어려운 상황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그의 짧지만 굴곡 많은 인생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한 여인에게로 귀결된다.

 


빈민가 출신의 때아닌 등장과 상위 단계 진출은 퀴즈쇼의 관계자들을 당황 혹은 매료시키고, 자유 평등의 시대가 도래했건만 아직도 신분에 얽매여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갖게 해주었다. 그의 출신 때문에 찾아온 유혹과, 무시, 그리고 그에 따른 취조는 인도의 현실을 고스란히 나타내려 한 감독의 의도는 아니었을까? (특히, 세계인권기구 따위에서 귀찮게 하면 어쩔려고! 라고 외치는 그 대사에서 -_-;)

 



사실 영화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그가 가장 마지막 단계에 도전하는 클라이막스 부분이지만 결말이 뻔히 예상되는 영화라 해도 미리 이야기하기엔 양심에 돌 하나 얹은 기분일 테니 그냥 넘어가려 한다. 가끔은 그런 뻔한 결과가 예상됨에도 기대되고 설레게 되는 것은 아직 내가 어린 탓일지도…(?).

 

어쩌면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혹은 정직하게 살면 평생이 행복하다는 진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진부한 이야기가 퀴즈쇼라는 것을 통해 한 청년의 험난한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기막힌 소재로 다시 표현되었다는 것은, 진부한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믿는다.

 


여담으로작년 여름, 인도에 다녀오신 지인께서 단 한 마디로 나에게 인도에 대한 인상을 심어주셨는데, 그것은,

“Cross”

라는 한 단어였다.

 

인도는 세로로는 카스트 제도, 가로로는 수많은 소수민족, 종교간 대립이 끊이지 않는 나라라는 의미다. 그러나 그 곳의 발전 가능성은 서구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고, 그 성장속도도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어찌 보면 이 영화도 인도의 한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이미 발리우드(Bollywood)라는 말이 문화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적지 않지만 좁은 남아시아의 틈을 벗어나 세계로 더욱 더 뻗어나갈 것임은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 조금 더 이런 생소하면서도 단순한 영화를 자주 즐길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점점 저질이 되어가는 글 솜씨로 좋은 영화 이미지 추락시키는건 아닌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_-;

그리고 잠시 자리를 빌어 좋은 영화를 추천해주고 한 달이 넘게 글이 늦어짐에도 독촉 전화 한 번 안 한 가우초 군에게 감사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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