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날의 동화 - 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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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Pixar 애니메이션의 첫 조우는 "몬스터 주식회사(Monster Inc.) 였다.

애들이 영화 시작하고 나서도 뛰어다니던 그 번잡한 극장에서 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어느덧 영화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숨죽여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이후로 내가 Pixar에서 나오는 애니메이션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리고 올초부터 날 설레게 만들었던 픽사의 신작, Wall-ⓔ를 보고난 후의 느낌은

딱 두마디로 압축하자면 "역시 픽사" 랄까..

내가 굳이 부제를 한 여름날의 동화라고 붙인 이유는, 픽사의 애니메이션이 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듯이,

아이들을 위한 영화인듯 하면서도 어른들 역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영화를 보았던 용산CGV에서는 주말이라는 내 우려를 한방에 불식시키고

거의 전좌석이 어른들로만 이루어진 경이적인(?) 모습을 보였다.


디테일한 장면 묘사라던가 하는 기술적인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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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로 인해 더 이상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지구를 대대적으로 청소하겠다는 프로젝트 아래

인간들은 모조리 우주 여객선을 타고 저 멀리로 날아가버리고 난 뒤의 황량한 지구.

한때는 자신의 친구들과 지구 청소를 하고 있던 월-E는 어느덧 혼자 남아버린다.

누군가의 실수로 전원이 꺼지지 않았던, 혼자만 고장이 안났던 간에

그는 드넓은 지구에서 흥미있는 물건을 무데기로 수집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청소로봇.

그리고 로봇은 감정이 없다는 이론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루 일과가 끝나면 그의 낙은

오래된 뮤지컬 영화를 보며 감상에 젖는 것이다.

그의 벗이라고는 그의 바퀴에 깔려도 버젓이 일어서는 바퀴벌레 한마리.

사실은 인간이라는 존재도 그렇지 않나.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도 혼자임을 느끼는 그런 느낌.

그리고 그런 느낌을 없애기 위해서 더 무언가에 열중하거나 하는 그런 모습.

월-E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모습 하나하나를 투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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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치 않게 찾아온 이브와의 만남.

그리고 그녀를 쫓아 처음으로 지구 밖으로 나가보는 월-E.

그가 그녀를 쫓아가는 모습은 사실 애틋하다기 보다 너무 그 모습이 순수하고 예뻐보여서

보는 내내 입가에 웃음만 띄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가 처음 보는 우주는 신비롭기만 하다.

스파크가 일어나는 듯한 은하수에 가만히 손을 대어보며 그는 자신이 우물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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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구를 떠나온지 700년이 된 인간들.

그들의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점점 기계에 의존해가는 현대 인류의 앞날을 예고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나름 쇼크를 받아보이는 월 E.

그리고 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니는 모.

모 역시도 사실은 처음으로 그에게 지정된 선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월-E 덕분에 맛보게 되었다.

그들의 만남은 구시대와 신시대의 조우랄까...

처음엔 서로 적응하지 못해 쫓고 쫓기는(?) 장면들을 연출하지만

어색하기만 한 통성명 하는 모습에서 나는 결국 그들이 둘 사이의 무언가 공통된 점을 찾아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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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영화를 본 모든 이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을만한 장면이라면 바로 윗장면이 아닐까.

날지 못하는 월 E 그리고 오직 지구에서만 살아와서 우주 세계를 잘 모르는 월 E의 순진함에 매력을 느껴가는 이브.

살아났다는 안도감에, 그리고 자신이 몰랐던 월 E의 지극정성인 모습에 이브는 월 E와 행복한 우주 퍼포먼스(?)를 펼친다.

날지 못하는 월 E가 선택한 소화기가 웃기기도 하면서도

신세대 로봇과 구세대 로봇 사이에 존재하는 메울 수 없는 차이를

메꿔 나가고 있는 주요한 아이템으로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우리는 기성세대와 신세대 사이에 존재하는, 그리고 시대가 점점 뒤로 갈수록 그 골이 깊어지는

그 틈새를 아주 일상적에서 찾을 수 있다는 암시가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짐작해본다.


비록 고대 그리스 어느 누군가의 글에도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고 새겨져 있다는 이야기가 있을만큼

메우기가 쉽지는 않을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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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먼저 영화를 본 지인은 그 영화를 보며 부제를 이렇게 지어주고 싶다고 했다.

"고마(쎄리) 손 한번 잡아 주이소~" 라고 -_-;

사실 그에게는 스파크가 일던 키스보다,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혹은 있어 보이는)

손을 잡는 것이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비록 영화의 한 장면을 보며 꿈꿔왔다고는 하지만,

그 순수한 모습에 감동받지 않을 여자가 세상 어디 있겠는가.

그런 그의 모습이 아마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입가에 미소를 띄우게 만들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그런 점에 Pixar 애니메이션이 오로지 아이들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되지 않게끔 하는

주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 아닐까.


아직 영화관에서 Wall - ⓔ를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꼭 "손 한번 잡아 보고픈 사람"과 함께 극장을 찾을 것을 권한다.

혹은, 세상에 정말 내편은 아무도 없어! 라고 생각하며 좌절하고 있는 당신께 권한다.

그렇게 힘들어 하고 있는 당신에게 그는  큰 눈망울(?)을 굴리며 당신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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